[동방]환상향의 무녀-프롤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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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쿠레이 무녀. 이곳 환상향을 지키는 자이며 모든 것을 평등하게 대해야 하는 존재. 만일 요괴가 인간을 공격할 땐 그들을 퇴치해야 하지만, 그건 하쿠레이 무녀로서의 당연한 할 일이다. 또한 누군가가 환상향에 이변을 일으킨다면, 그것이 설령 최강의 요괴라 할지언정 이변의 원흉을 처리한다. 그렇기에 하쿠레이 무녀는 그 누구에게도 져서는 안 된다. 무적이라면 무적인 거다.

‘그건 그렇다 쳐. 도대체가 이게 무슨 꼴이야.’

하지만 이런 하쿠레이는 대대로 인간이었으며, 미래에도 인간인 존재이다. 제아무리 하쿠레이 무녀라 해도 인간으로서의 생명이 끊어진다면 그걸로 끝이다. 대체 뭐가 무적이란 건지 알 수가 없다. 아, 무적과 불사신은 개념이 좀 다른 걸까.

그보다 왜 내가 이런 곳에서 누워 있는 것일까. 하늘을 날던 도중 돌연 힘이 빠진 탓에 그대로 추락한 것까진 기억이 났다. 아마 떨어진 충격으로 정신을 잃었겠지. 그리고 잠시 뒤 눈을 떠보았을 땐 환상향의 하늘이 보였다. 변함없이 푸르른 하늘에 조용히 흘러가는 흰 구름이 너무나 평화롭기만 하다. 이런 날이 차 마시기에 딱 좋은데…….

‘그래도 이런 몸으론 무리겠지.’

그렇다. 내 마음대로 움직일 수 있는 건 하늘을 응시하고 있는 이 두 눈뿐. 그것을 제외한 모든 신체는 뇌의 명령을 계속 거부한 채 축 늘어져 있었다. 맴-, 맴-, 맴-. 울창한 숲속에 울려 퍼지는 매미소리는 평소에 듣던 것과는 미묘하게 달랐다. 마치 사람의 인기척을 찾아볼 수 없는 어느 숲 한가운데에 추락한, 어느 불운한 하쿠레이 무녀의 죽음을 애도하는 것 같았다. 그게 아니면 단순한 비웃음일까.

“하, 아─.”

소리의 기능을 상실한 목은 숨을 쉴 때마다 비릿한 공기가 새어나갔다. 아무래도 땅에 떨어진 직후 몸속에 생긴 출혈이 목구멍을 통해 역류한 모양이다. 이런 느낌은 난생 처음이다. 하기야 피탄 당하래야 당할 수 없는 무적의 하쿠레이 무녀니까.
그 순간 레밀리아가 ‘피의 향기는 매우 달콤하다.’ 라는 말이 기억났다. 하지만 이건 달콤하긴 커녕 역겹기 그지없었다. 하기야 그녀는 흡혈귀이고, 나는 인간이니까 말야. 비교할 걸 비교해야 하는 상황이려나.

그렇게 이것저것 생각하는 동안 시야가 어두워지고 있었다. 혹시나 지나가는 미스티아의 장난이 아닐까 싶었지만, 다행인지 불행인지 그녀의 노랫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그렇다고 해서 만년 배고픔에 시달리는 루미아일리도 없었다. 어떻게 생각해도 이건 하쿠레이 무녀의 죽음일 것이다. 그러고 보니 어느 샌가 매미소리가 들리지 않게 되었다. 완벽히 혼자가 되고 말았다.


「어이, 레이무.」

언제부턴가 잊고 있었던 마리사의 목소리가 머릿속에서 들려온다. 움직일 리 없던 몸이 자연스럽게 마리사가 있는 곳으로 돌아섰다. 신사의 붉은 기둥 옆에 선 마리사가 울긋불긋 물든 낙엽 하나를 쥐며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아주 잠깐이었지만, 마리사에게서 끝나가는 가을의 공기가 강하게 느껴졌다.

「나랑 같이 전생하지 않을래?」

그녀는 다짜고짜 내게 말도 안 되는 것을 권했다. 전생이라. 그러고 보니 전에도 이런 말을 들은 적이 있었던 것 같다. 물론, 누군가가 그런 말을 했는지에 대해선 기억나지 않는다. 하지만 이것만은 확실하게 기억났다.
아아, 그래. 그때나 지금이나 나는

「아니. 사양하겠어.」

라고, 딱 잘라 거절했었다. 그러자 마리사는 ‘아, 그래?’ 라고 말한 뒤 어제와 똑같이 시원스런 작별인사를 고했다. 내가 왜 전생을 하지 않는지에 대한 질문은 하지 않았다. 평소대로처럼 인사를 주고받았을 뿐이었다. 뭐어, 이런 점이 마리사답다고 한다면 마리사다웠다. 그래서 나는 묵묵히 그녀의 작별인사를 받아주었다. 그리고 빗자루를 탄 채 하늘 저 멀리 사라져가는 마리사의 모습을 한동안 지켜보고 있었다.

결국 마리사도 자신의 끝에 도달한 것이었다. 하지만 전생을 한다는 건 그녀로선 꽤 의외였다. 그 누구보다 자유분방한 그녀가 전생이라니. 그것은 과연 누굴 위한 선택이었을까. 사랑하는 사람? 매일같이 연부, 연부라며 떠들어댔지만 설마하니 그녀에게 그런 게 있을 리가. 그렇다면 소중한 사람? 하지만 그녀에게 소중한 것은 과연 무엇일까. 일단은 도둑을 일삼는 마법사였고, 그녀의 물건 대부분은 훔쳐온 거였으니까 말이다. 설마하니 매일 외상을 지고 있는 린노스케일까? 아니면 절대로 떨어지고 싶지 않는 사람? 그것 또한 소중한 것과 같은 맥락이다.

「그렇다면 자신을 위함?」

그녀가 말해주지 않는 한 정확한 답은 알 수 없었다. 하지만 확실한 건 그 이후로 마리사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는 것이다. 가을이 지나 겨울이 오고, 겨울이 지나 봄이 왔고, 봄이 지나 여름이 등장했다. 그리고 그 날과 똑같은 가을이 찾아왔지만 마리사의 모습은 전혀 보이지 않았다. 대신에 그녀의 빈자리를 이어가듯 홍마관의 유일한 인간인 메이드가 생명을 끝마쳤다. 다른 인간들에 비해 짧은 생이었던 건 아마 그녀의 능력 탓이라 생각한다.

그런데 그녀가 죽기직전의 어느 날 밤이었다. 태평하게 술을 마시던 시간에 수다쟁이 천구가 내게 놀라운 소식을 전해주었다. 그것은 사쿠야의 곁에 마지막까지 있어준 자가 그녀의 주인인 레밀리아였다고 하는 사실이었다. 위엄을 중시하는 흡혈귀 치곤 그녀의 행동 또한 예상 밖이었다. 사실 레밀리아 말고도 그녀의 동생인 프랑의 자세─사쿠야가 죽은 뒤 그 시신 앞에서 눈물 한 방울 흘리지 않는 초연한 모습 또한 예상 밖이었다. 평소대로였다면 모든 것을 부수며 폭주를 일삼았던 아이일 텐데 말이다.

생각해보면 마리사가 없어진 뒤로 모든 게 예상 밖의 일뿐이었다.

그리고 사쿠야의 장례식이 치러지던 날. 홍마관의 요괴들뿐만 아니라, 사쿠야와 인연을 맺은 인요 모두가 그녀의 죽음을 애도하기 위해 홍마관으로 몰려들었다. 엄숙한 분위기 속─그 누구도 소리 내지 않는 분위기 속에서, 갑자기 홍마관의 문지기가 울기 시작했다. 문지기의 성격상 끝내 울음을 참지 못하고 터뜨린 것이라 생각했다. 그리고 그녀의 뒤를 이어 홍마관의 메이드들의 훌쩍이는 소리가 차례차례 들려왔다.

나는 그들의 모습과 두 명의 초연한 흡혈귀를 뒤로한 채, 한 줌의 재가 되어 하늘로 날아가는 사쿠야의 모습을 지켜보았다. 그녀는 명계에 갈 일이 없다는 듯 매우 편안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자신의 생에 만족했다는 뜻이었다.

그러다 나는 잠시 생각에 빠졌다. 과연 나는 생에 만족했는지……라고.

그 후에도 시간은 덧없이 흘러갔다. 환상향은 두 사람의 죽음에 어떠한 변화도 보이지 않은 채 평범한 일상을 선사했다. 나는 마리사와 사쿠야가 살아 있었을 때와 똑같이 환상향의 하늘을 바라보며 차를 홀짝였다. 때때로 유카리나 스이카가 찾아오곤 했지만 신사의, 혹은 환상향의 공기는 변하지 않았다. 풍경 또한 변하지 않았다. 그야말로 불변하는 환상향이었다. 이런 게 바로 영원함이란 건가.

“쿡쿡.”

새삼 추억이랄 것도 없는 기억을 더듬어보니, 내가 맞이한 죽음이 그 둘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고독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마리사야 누군가를, 혹은 자신을 위해 전생을 한 거니까 일단은 제외겠지만. 뭐어, 사쿠야는 자신의 임종을 레밀리아가 지켜봐주었기에 혼자가 아니었다. 인간의 마을 또한 그들의 가족이 있기에 고독한 죽음은 존재하지 않았다.

그런데 나는?

요괴건 인간이건 그 모두를 평등하게 보며, 또한 평등하게 대한다. 그렇기에 하쿠레이 무녀에게 있어 최후는 언제나 고독하다. 누군가가 슬퍼해주지 않는다. 이대로 비와 바람에 무녀의 그릇이 썩어 뭉그러지고, 최후엔 흙으로 사라진다. 그것이야말로 나─하쿠레이 무녀에게 어울리는 결말이다. 애당초 내가 사라진다 하여도 본질인 하쿠레이의 무녀는 사라지지 않는다. 왜냐하면 환상향에 있어 하쿠레이 무녀는 반드시 필요하기 때문이다. 결국 내 빈자리는 다음 세대의 무녀가 채운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 이 순간 내가 사라지는 건 아무 것도 아니다. 단순히 ‘지금에 존재하고 있던’ 하쿠레이 무녀가 사라질 뿐이다.

‘바보 같아.’

어느 덧 두터운 안개 속에서 하쿠레이 무녀였던 나는 깊은 어둠 속으로 발을 디뎠다. 이젠 더 이상 돌아올 수 없는 곳이 된 환상향을 뒤로한 채.


P.S: 정말로 오늘만큼은 포스팅을 많이 하는 것 같다. 여하튼 이 소설은 몇 달 전에 계속 쓰고, 수정함을 반복한 동방 팬픽의 시작부분이다. 다음 편이 올라올지는 본인 마음이겠지만...솔직히 동방 소설은 익숙치 않아서 어렵기만 하다. 라기보다 창작을 써야할 시간에 이러고 앉아 있으니...그저 한심할 따름이다.orz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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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oolK | 2007/12/02 23:34 | 2차창작문 | 덧글(2)

Commented by 알트세임 at 2007/12/02 23:51
레레레레이무 죽는겁니까! 랄까 마리사도 죽었어!!!! 다들 죽음이 너무 꺠끗하달까 넵 얘네는 이런 이미지이긴 한데 제발 얘네 인간인게 제일 슬퍼요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Commented by coolK at 2007/12/03 12:21
알트세임님//동방은 이런 소제가 흔해서 말이지요. 일단 이 소설은 이변을 해결하던 인간 대표주자들이 사망, 그 후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습니다...만, 전개가 참 뭐라할 지...orz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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